간절한 기도와 역사를 품은 인천 천주교 성지 답동 성바오로 성당
장모님은 아주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십니다.
막내딸 집에 머무시는 동안에도, 성당 미사는 절대 거르지 않으셨습니다.
오래전부터 꼭 가보고 싶어 하시던 답동성당을 함께 찾은 날, 저는 단순한 동행 그 이상의 시간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천주교 인천교구 주교좌 답동 성바오로 성당
인천광역시 중구 답동에 위치한 답동성당은 인천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천주교 성당으로, 역사적 가치와 아름다운 고딕 양식 건축미로 유명합니다.
특히 인천교구의 본당이자 중심인 성당, 인천교구의 주교가 계시는 성당입니다.
1889년,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에서 파견된 요한 신부(Wilhelm)가 인천에 도착하면서 이 성당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답동성당은 ‘한국 최초, 인천 최고 100선’에 선정된 성당으로, 1937년에 현재 모습으로 증축되어 오늘날까지 인천을 대표하는 천주교 성당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대한민국의 역사와 천주교 역사를 만들어간 유적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답동성당에 있는 비석
천주교의 역사
천주교 인천교구 역사 박물관 안타깝게도 들어가 보지 못했습니다.
인천 천주교의 역사를 그대로 품은 역사박물관 건물
바다가 불러세운 교회 어떤 내용일까 많이 궁금했습니다.
제 추측으로는 인천 항구 도시에서 꽃 피운 천주교의 발자취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이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아래 보이는 돌이 무엇인지 아실분이 있을까요?
저는 이돌이 무엇일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저 무엇을 상징하는 조각품일지를 생각했습니다.
충북 고불선원 석암 스님이 기증하신 역사적 증거
형구틀: 형구틀은 조선시대 박해 시기, 천주교 신자들을 고문하거나 속박하기 위해 사용된 형벌 도구 중 하나
돌 가운데 구멍은 손목이나 발목을 고정하던 자리로, 오늘날엔 순교의 흔적이자 신앙의 증거로 남아 있습니다.
짧은 묵상이라도 이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선다면, 과거의 고난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고자 했던 이들의 깊은 용기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성모상 앞 기도 문
인천교구 주보이신 바다의 별 성모님! 어려운 중에 있는 사람이 기도하면, 늘 위로해 주시고 함께 해 주셨습니다.
오늘 제가 바치는 이 초에 제 마음과 정성을 담사오니 저희 소망을 이루어 주소서.
저와 저의 가족을 위해서도 기도하오니 주님께 전구해 주소서. 아멘
성모께 바치는 초
마음까지 아름다워지는 답동성당
제가 느낀것 하나가 이곳 답동 성당에 있으면 경건해지고 제 마음까지 아름다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성당 정문 좌측을 지키고 있는 성 바오로 상
성모 마리아님과 예수님
아기 예수를 품고 계시는 성모 마리아 님 상
답동성당의 종탑을 올려다보면, 시간마저 잠시 멈춘 듯한 고요함이 느껴집니다.
하늘을 향해 쭉 뻗은 석조 기둥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은 마치 천상의 빛처럼 마음을 감싸 안습니다.
종은 울리지 않아도, 이 탑은 오랜 시간 동안 인천의 신앙과 역사를 지켜온 묵묵한 증인이었습니다.
저 멀리서 답동성당이 멀리 보이게 사진으로 담아봅니다.
떠나기 아쉬워 다시 답동성당에 다가갔습니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듯한 답동성당의 오래된 출입문 앞에 섰습니다.
손잡이를 스친 바람의 시간, 닳아진 나뭇결 사이로 수많은 신자들의 기도와 발걸음이 머물렀을 터.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열리고 닫히던 이 문은 그 자체로 하나의 기도문처럼 느껴졌습니다.
성모 마리아상과 아기예수가 노을 지는 인천항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성당 앞에서 보이는 신포 국제시장 전경
멀리 해방 이후 한국인이 직접 운영한 최초의 민간 극장 중 하나인 애관(愛館) 극장이 보입니다. 이 이름은 ‘사랑하는 극장’이란 뜻으로, 지역 주민들의 애정을 담아 지어진 이름입니다.
한때 인천 시민들의 데이트 명소, 청춘의 상징, 가장 가까운 문화 공간도 답동성당의 언덕에서 볼 수 있습니다.
민들레 꽃 모양의 조형물과 노을
요즘 마음이 많이 어지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앞으로 이곳 답동성당에 자주 올것 같습니다.